Prologue

2022. 2. 14. 11:08

Prologue

10년 넘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온 지 벌써 햇수로 17년이 지나버렸다.

익숙한 듯 다른 풍경, 기대와는 맞지 않았던 일자리 그리고 여전히 낯선 사람들...

열심히 살았다는 솔직히 거짓말이고 이래저래 요령껏 잘 버틴 것 같다.

 

중년을 훌쩍 넘어버린이즘에 무엇을 찾고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년을 쳐다도 보지 않던 컴퓨터 한 곳에 방치된 옛날 폴더들을 어쩌다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진이란 게 참 그렇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 장 한 장을 보고 있자니 그때 풍경, 빛 그리고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기억이 난다.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나름 찬란했던 20대 유학생활, 조금은 서러웠던 타향살이를 달래 보려 위안삼아 미친 듯이 몰입했던 취미생활, 지금은 전혀 다른 것들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차로 한 시간을 달려 필름 현상을 맡기고 밤새 스캔을 하고 수십 번도 넘게 프린트를 망치는 일들의 반복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너무 행복했었다.

 

당시 내 미천한 사진들을 간간이 올렸던 꽤 유명한 웹사이트는 지금은 폐쇄되었는지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래도 그때 열심히 활동하시던 몇몇 분들은 이제 어엿한 작가로 활발히 작업을 하시는듯하다.

반가웠다.

 

정말 오랜만에 내게 남아있는 장비들을 추려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하지도 않다.

아날로그 기계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직 작동도 잘 되는 것 같다.

 

귀국 후 나에게 사진이란 아이폰이 거의 전부였다. 

 

박스에 쌓여있던 현상된 네거 및 슬라이드 필름들도 꺼내본다.

예전처럼 꽤 잘 보존돼있다.

햇살이 잘 드는 창문 앞에서 필름들을 요리조리 비추다가 꺼내논 카메라들을 만지작거린다.

재미있다... 다시 해보고 싶다...

문득 내겐 쓸만한 디지털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참에 새로 하나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약간 겁이 난다. 굳이?

 

이전까지 블로그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티스토리를 덩그라니 계설 해놓고 당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고 지금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충동적으로 지난 사진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서였는데 스킨을 적용하고 사진을 처음 올리기까지 며칠은 혼자 씨름했던 것 같다.

그래도 찾고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 이 편한 세상 덕에 최소 글을 쓰고 사진은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남에게 하거나 알려지는 것이 매우 싫다.

그 흔한 카톡 프로필이나 여타 SNS도 하지 않는다.

내 삶 속에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게 영 석연찮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되고 반가웠던 사진들 덕분에 그냥 이때쯤 뭔가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비단 사진뿐이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들도 조금씩...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여성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 탓 일 수도 있다.-

 

 

Februar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