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es Beach

2022. 2. 28. 18:26Essay

만일 내가 지금 막 뉴욕 JFK(John F. Kennedy International) 공항에 도착했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말 않고 당장 공항 내 허츠(Hertz) 렌터카로 달려가 차를 빌려 타고 존스 비치(Jones Beach)로 향하겠다.

 

하늘을 찌를 듯 늘어선 멋진 건축물들과 눈이 휘둥그래 떠질 유명 브랜드샵들이 즐비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 공존하는 화려한 맨해튼(Manhattan)을 등지고 그와 반대편인 동쪽 또 동쪽으로 달려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이다.

 

존스 비치는 뉴욕 롱아일랜드(NY Long Island)의 남쪽에 위치한 존스 비치 섬(Jones Beach Island)을 대표하는 해변이며 길이는 무려 10.5km에 달한다.(존스 비치외 크고 작은 해변들을 총합하면 그 규모는 15km가 넘는다.) 이곳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의 여름 피서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내 경험상 한참 시즌 때 방문을 해봐도 워낙 방대한 규모 탓인지 단 한 번도 사람들로 붐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곳을 내가 이토록 사랑하고 꼭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존스 비치가 내 사진인생에 있어서 나에겐 일종의 성지이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모든 것이 뒤엉켜있는 뉴욕시를 여기저기 누비며 거리 스냅(Street Photography)을 즐기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잠시만 눈을 돌려 도심에서 조금 멀어질 여유를 챙긴다면 존스 비치만큼 아름답고 흥미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도 뉴욕 내에서 찾기 쉽지 않다.

 

이 거대하고 거친(Wild) 지역은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차로 1시간 내로 도달할 수 있으며 내가 살던 집에서 불과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존스 비치를 방문하기 위한 첫걸음은 대부분 뉴욕시와 롱아일랜드를 동서로 길게 연결하는 495번 고속도로(Long Island Expressway: I-495)에 올라타는 것부터 시작된다. East495(E495)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본격적인 롱아일랜드 지역에 들어서면 롱아일랜드 남쪽을 향하는 미도우브룩 스테이트 파크웨이(Meadowbrook State Pkwy: 고속도로 같은 넓은 국도)로 갈아탄다. 이후 곧장 남쪽으로 가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오션 파크웨이(Ocean Pkwy)로 이어지는데 이때부터는 존스 비치 아일랜드에 들어서게 된다.  

 

대부분 미 동부 지역의 메인도로들이 그렇듯이 울창하게 늘어선 키 높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좌우로 병풍 쳐진 길고 넓은 도로는 존스 비치 아일랜드에 가까워져 올수록 그 전경이 점점 바뀌어 운전의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한다. 바닷가 인근 지역 특유의 나지막한 나무들과 우거진 덤블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수많은 작은 섬들 그리고 강인지 바다인지 그 경계의 모호함이 느껴지는 이국적 광경은 마치 내가 지금 세상의 끝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The Jones Beach Water Tower

존슨 비치 섬에 완전히 들어서면 아무것도 없는 다소 황량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연필 모양의 높은 탑을 곧 마주하게 된다. The Jones Beach Water Tower라 불리는 이 인상적인 첨탑은 약 90여 년 전에 세워졌으며 무려 70m 높이에 달하는 이 섬의 상징물로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기념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존스 비치 주립공원 내의 신선한 물은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나 역시 이번에 글을 쓰다가 알게 되었다.)

 

타워를 지나면 이제 바로 존스 비치 주립공원(Jones Beach State Park)이다. 여기저기 퍼져있는 주차장들 중 한 곳을 골라 주차를 하고 나면(개인적으로 Filed 6를 선호한다. 그곳이 해변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주차장이다.) 이제 드넓은 해변의 자연을 마음껏 감상하면 된다.

 

대서양과 맞닿은 이 길디긴 해변은 매년 약 600만 명의 방문객들로 북적인다고 뉴욕주에서 자랑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해운대나 경포대 해수욕장 같은 편의시설이나 전망 좋은 식당 혹은 카페 같은 것들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그랬다.) 약간은 부실한 샤워장 및 간이화장실 그리고 간단한 스낵 정도만 판매하는 매점 정도가 있을 뿐 그 외에는 광활하고 황량한 모래사장 그리고 드넓은 푸른 바다가 있을 뿐이다.(엄청난 길이의 나무 산책로: boardwalk도 있긴 하다.)

 

을씨년스럽고 어찌 보면 기괴하기까지 한 이곳 풍경은 그래서 존스 비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백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마치 디스커버리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보았던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고 있는 모험가인 듯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지 않고 그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뉴욕 주 당국의 현명한 선택과 값진 노력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이 사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곳곳에 펼쳐진 높고 낮은 사구(Dune)들과 수없는 세월 동안 해풍을 맞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작은 나무들, 이름 모를 식물들, 덤블들 그리고 다소 성의 없이 만들어진 끝없이 쳐진 낡은 나무 펜스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미칠듯 조화를 이룬다. 

 

특히 바닷가 특유의 변덕스러운 기후는 시시각각으로 구름과 빛 그리고 주변 색온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꾸어 해변의 풍경을 더욱 흥미롭게 변화시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배경 삼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이나 어둑한 늦은 오후 또는 먹구름이 잔뜩 낀 추운 겨울의 존스 비치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풍광을 항상 보여주었다.

 

틈만 나면 제집 드나들듯 자주 방문하다 보니 차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이른 새벽, 그날따라 평소 자주 가던 지역이 아니라 접근성이 다소 떨어져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을 한번 가고자 마음을 먹고 주립공원내 주차장이 아닌 조금 외딴 장소에 차를 정차해놓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쌀쌀한 아침 공기를 느끼며 장비를 챙겨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갑자기 내 차 뒤에서 오만가지 색상의 불빛이 번쩍거린다. 

 

주 경찰(NY State Park Police)이었다!

경찰의 불시검문 대응수칙을 혼자 되뇌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차에서 경찰관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곧이어 다가온 경관은 나에게 면허증과 차량 등록증을 요구하며 도대체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냐는 의심에 찬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마추어 사진가이고 쵤영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매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최대한 공손히 이야기를 했지만 내 대답은 들은척만척하며 큼지막한 손전등으로 내차 곳곳을 마구 비추던 그 경관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곧 나에게 두 손을 자신에게 잘 보이게 높이 들고 차에서 천천히 내리라고 강력히 지시했고 부들부들 떨리던 내 손들은 곧 차가운 경찰차 후드 위에 올려지게 되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Gitzo Tripod Bag

그리고 그 경관과 그의 파트너는 내차 옆좌석에 실려있던 길고 검은 가방을 끌고 나와 나에게 보이며 이게 뭐냐고 매우 무서운 말투로 물었는데 내가 아무리 그것은 카메라 삼각대 가방일 뿐이라 해봤자 그 순간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 눈에는 그것이 마치 장총(Rifle) 케이스처럼 보였을 것이다.(항상 뭐 눈에는 뭐 밖에 안보일 뿐이다.)

 

결국 가방을 조심스레 열어보던 경관들은 곧바로 매우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를 그 자리에 내팽개친 채 “Have a nice day”란 짧은 말만 남기고 급히 떠나 버렸는데 멀어져 가는 엄청난 덩치의 두 경관들 뒤통수에 대고 나는 연신 “Thank you sir!”를 남발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이 정말 자존심 상하고 비참하지만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존스 비치는 그렇게 나에게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혹은 나쁜 기억일지라도...

 

오늘 밤 이 글을 쓰며 그곳을 다시 떠올려보니 내가 평소 그렇게 싫어하던, 해변을 따라 수없이 떼 지어 몰려있던, 난생처음 본 몸집을 자랑하던, 사납고 겁 없는 그 갈매기들마저 그리워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Jones Beach New York State

https://parks.ny.gov/parks/jonesbeach/

 

참고 이미지 출처

https://www.facebook.com/bestofli/photos/a.327878580565960/3851133588240424/?type=3&theater

https://www.google.co.kr/maps

https://www.gitzo.com/us-en/tripod-bag-gc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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