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쉬운 똑닥이 중형 카메라 Fuji GA645Zi

2023. 4. 17. 17:15Chat : 아무 이야기

최근 필름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하면서 재미나게 즐기고 있는 645 포맷 중형 필름 카메라인 Fuji GA645Zi Professional이다. 1998년 최초 발매된 이 카메라는 여러 Fuji 중형포맷 GA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 버전이며 모든 것이 풍족하던 1990년대를 상징이라도 하듯 많은 부가기능들과 호사스러운 전자장치를 가지고 있다.   

 

Fuji GA645Zi의 최고 장점은 필름을 로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동들을 카메라가 자동으로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이다. 전문 사진가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중형 카메라지만 마치 35mm 똑딱이 필름 카메라처럼 사용법이 간단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P(Program Mode) 혹은 A(Aperture Priority) 모드에 놓고 셔터만 누르면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준다.(개인적으로 P모드를 대부분 사용한다.) 또한 중형 카메라 치고 적은 부피와 무게를 가지고 있어 휴대성도 뛰어나다.(무게: 약 880g, 크기:약 165 x 111 x 75mm)

 

단단한 금속과 결코 값싸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카메라 바디의 만듦새와 마감은 아주 훌륭하며 평평하고 넓적한 생김과는 달리 막상 카메라를 쥐어보면 안정적이고 좋은 그립감을 제공한다. (전혀 다른 카메라지만 언뜻 보면 즉석 필름 카메라인 후지필름 인스탁스 와이드 300과 외관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카메라 조작은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큰 모드 다이얼과 선택 다이얼 그리고 노출 보정 버튼을 통해 이루어지며 후면의 작은 LCD를 통해 현재 설정 상태를 확인 가능하다. 언뜻 간편해 보이는 조작법과는 달리 정작 세세한 설정을 하고자 한다면, 특히 선택 다이얼의 쓰임새가 다양하기에 미리 매뉴얼을 한번 정도 정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GA645Zi에는 Fujinon Super-EBC 55-90mm, F 4.5-6.9, 1.6배 AF 줌 렌즈가 고정으로 달려있다.(35mm 풀프레임 환산 기준 화각 약 34-56mm) 풍경, 일상 스냅 및 인물 사진에서 모두 유용하게 쓰이는 화각대로 렌즈를 별도 교환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화각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55, 65, 75, 90mm 이렇게 4가지 고정 화각들을 후면 줌 레버를 조절해 그 범위를 각각 선택할 수 있다. 전원을 켜는 순간 전면으로 앙증맞게 돌출되는 이 접이식 줌 렌즈의 해상력은 전 구간 충분히 샤프하며 좋은 콘트라스트를 보여준다. 최대 개방이 F4.5-6.9에 불과해 너무 느린 조리개값이 아닌가 여길수 있지만 미러가 없는 레인지파인더 방식에다가 셔터가 렌즈에 내장된 리프셔터(leaf shutter)를 채용하고 있기에 상당히 느린 셔터 속도에서도 핸드헬드로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이 조리개값은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GA645Zi 뷰파인더
GA645Zi로 촬영한 120 네거티브 필름

분리되는 필름백(혹은 인서트?)을 가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SLR 방식의 645 포맷 중형 카메라(예: Pentax 645)들과는 달리 GA645Zi는 세로 프레임 뷰파인더가 이 카메라의 기본 방향이다. 즉 가로 프레임 사진을 찍고 싶으면 카메라를 세로로 돌려 잡아야 한다. 개개인에 따라 다소 불편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세로 프레임 사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것은 오히려 더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뷰파인더 자체는 밝은 편이라 시야가 좋으며 간결한 촬영정보 제공과 함께 거리에 따라 프레임 라인이 변화하는 자동 시차보정 기능도 탑재되어 있다. 물론 시차보정 기능이 있다지만 SLR 카메라와는 달리 레인지파인더의 구조적 설계상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시차(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것과 실제 찍히는 것에 차이가 나는...)는 촬영 시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GA645Zi 후면 모습

GA645Zi는 후면 LCD가 아예 먹통이 되거나 일정 부위가 표시되지 않는 심각한 이슈가 있다. 뒷면 백도어와 카메라 바디를 연결하는 경첩 사이를 통과하는 얇은 리본 케이블이 이 틈새에서 맞닿아 점차 끊어지는 현상으로 발생하는 것인데 중고 시장에 나와있는 많은 GA645Zi들이 이 문제가 있으므로 처음 구입 시 반드시 확인이 필요하다. 후면 LCD가 표시되지 않더라도 기본 촬영을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ISO 감도 설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지므로 여러 면에서 불편하다. 아예 M모드로 외장노출계만 사용하던지 아니면 외장 노출계와 내장 노출게의 노출값을 비교 후 현재 카메라에 설정된 ISO값을 추측, A모드에서 노출보정을 해 사용하면 되지만 매우 귀찮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GA645Zi 리본 케이블
GA645Zi에 필름 로딩시 백도어를 완전히 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는것이 좋다.

이베이등에서 리본 케이블만 별도 구입이 가능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교체 가능한 수리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폴란드에 위치한 FOTOTECH service and repair라는 곳에서 GA645Zi LCD 수리를 전문으로 취급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리본 케이블이 마모되거나 끊어지는 현상을 방지하는 방법으로는 필름을 넣을 시 카메라의 백도어를 180도 완전히 열어젖히지 말고 필름이 들어갈 정도만 조심스레 연후 왼손으로 백도어 부분을 지탱해 주고 오른손으로 필름을 로딩해 주는 것이 좋다. 즉 최대한 경첩 부분에 불필요한 압력을 주지 않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GA645Zi 수동 초점 사용법

GA645Zi의 또 다른 큰 단점으로는 이 카메라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 종종 초점이 나간 사진들에 당황스러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AF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크고 대비가 뚜렷한 부분에 정확히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흐린 사진을 찍게 된다. 따라서 항상 뷰파인더 오른쪽 부분의 포커싱 미터를 확인하면서 내가 초점을 맞춘 부분이 포커싱 미터에 표시되는 거리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수동 초점 모드를 지원하지만 후면 LCD에 표시되는 제한적인 거리 리스트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는 다소 이질적인 방식이라 적극 사용하기에 내키지 않는다.(나는 장노출 촬영 시에만 쓰곤 한다.) 최소 초점거리가 1m나 된다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운 약점이다. 가령 테이블에 마주 않은 친구나 음식 사진을 그냥 찍는다면 항상 초점이 나간 사진을 얻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단점들을 사전에 잘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한다면 GA645Zi 만큼 쉬운 작동법과 휴대성을 가진 편리한 중형 필름 카메라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내 기준이지만 외관 디자인도 매우 아름답다.) 항상 가방에 넣어두고 어디로든 가지고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카메라이다.

 

GA645Zi는 현재 이베이에서 상태 좋은 것들이 $1,000 USD 내외에 거래가 되고 있는 것 같다.(1998년 최초 출시가: 약 $1,900 USD) 중형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있고 처음 입문을 하고자 하는 사용자라면 한 번쯤 구입해 소장해 보는 것도 나름 가치 있다 여겨진다. 후지필름에서 두 번 다시 이런 카메라를 만들어 줄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film-and-darkroom-user.org.uk/forum/showthread.php?t=12219&page=2

Fuji GA645Zi 자세한 리뷰: https://photojottings.com/fuji-ga645zi-55mm-90mm-review/

Fuji GA645Zi 사용법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BQ-ExzCRE8&t=354s

 

Fuji GA645Zi Sample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