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son SC-P904(P900)

2022. 7. 3. 11:25Chat : 아무 이야기

프린터를 샀다.

20년 만에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하면서 자가 프린트만큼은 더 이상 하지 말고 꼭 필요하다면 전문 업체를 이용하자 다짐을 했었는데(개미지옥에 또다시 빠지기 싫어서...) 쓰지만 달콤한 그 매력적인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대신 이번에는 프린트 프로파일(profile)의 퀄리티나 결과물의 컬러매칭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그냥 편하게 즐기자는 마음이 크다.(언제까지 이런 마음일지 모르겠다만...) 아마추어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어차피 그 한계가 있음을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구입한 프린터는 엡손(Epson)의 SureColor SC-P904이다. 한국에서는 P904로 불리고 여타 다른 국가에서는 P900으로 판매된다. 똑같은 제품인데 차이점은 잉크가 서로 호환이 안되는 것 같다.(카트리지의 사출모양이 조금 다르고 인식칩도 별도로 사용하는듯함.) 해외직구 시대가 열리면서 아마도 엡손측에서 해외 직구 유통을 서로 막고자 조치를 한 것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좀 얍샵하다...)

 

P904는 엡손의 10가지 UltraChrome Pro 잉크(안료: pigment base)를 사용하며 최대 5760x1440 dpi의 고해상도 A2사이즈 프린터이다. 무엇보다 외관적 디자인이 기존 프린터들과 달리 수려하고 대형 프린터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동급 제품들에 비해 그 크기나 무게가 적어 공간을 덜 차지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설치는 직관적이며(전원 연결하고 잉크 설치하면 거의 혼자 알아서 다한다.) 요즘 가정용 일반 프린터들이 다 그렇듯 Wifi 연결이 가능해 무척 편리하다. 사이즈가 기존 대비 작아졌다고 해도 A2 사이즈 프린터가 차지하는 기본적인 부피가 있으므로 내 컴퓨터가 있는 방에는 마땅히 둘 곳이 없어 다소 거리가 있는 별도의 공간에 프린터를 설치해야 했는데 라이트룸에서 완성된 수백메가 사진을 16bit 모드로 프린터에 내보내도 안정적인 연결을 보여준다.(나 같은 경우 Linksys Velop AC3900 4대로 메시 WiFi 시스템을 구성해 사용하고 있는데 같은 장소에 설치돼있는 HP의 가정용 복합기인 8600은 가끔 연결이 끊어질 때가 있다.) 내가 이 프린터를 구입하기 전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Wifi 연결성이었는데 말끔히 잘 작동하는 프린터를 보면서 세상이 많이 편해지고 좋아졌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또한 상단의 투명한 창을 통해 프린트 과정을 일부 지켜볼 수 있고 내부에 약한 LED 조명까지 설치되어있어 어두운 환경에서의 식별에도 유용하다.

 

Epson Stylus Photo 1290 & 2200

아직 제대로 된 프린트를 만들어보진 않았지만 테스트 겸 몇 장의 사진들을 출력해보았는데 해상력과 컬러감은 정말 좋다. 20여 년 전 한참 디지털 프린팅에 빠져있을 때 나는 엡손 Stylus Photo 1290과 2200, 이렇게 두대의 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했었다. 이들 프린터들과 비교해 일단 매트(matt)계열 용지를 위한 매트블랙(MK) 잉크와 글로시(glossy)한 용지를 위한 포토블랙(PK) 잉크를 번갈아 갈아 끼우지 않아도 되는 점이 너무 편리하게 다가온다. (이 점은 최근 P904에 와서야 비로소 변화되었다고 한다.)

 

Stylus Photo 2200은 엡손 정품 잉크를 사용해 주로 파인아트 매트용지들에 프린트를 했었고 1290은 요즘은 흔하지만 그때는 나름 혁신적이었던 무한 잉크 공급 시스템(NoMoreCarts사의 CIS 시스템: 제대로 된 사진 자료를 지금은 찾을 수 없음)을 설치해 글로시한 용지들용으로 사용했었다. 현재는 엡손에서 제법 많은 수의 포토용지들을 자체 공급하고 있고 기본 제공하는 프로파일들 또한 매우 고품질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었다. 우선 엡손의 용지가 글로시 계열 외에는 그렇게 다양하지 못했기에 자연스레 파인아트계 포토용지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들의 제품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용지 구입은 어렵잖게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내 프린터와 잉크에 맞는 프로파일들이었다.(이 프로파일이 없거나 제대로 맞지 않으면 모니터로 보는 화면과 사진의 컬러매칭이 전혀 되지 않고 프린트의 퀄리티도 현저히 떨어진다.) 지금은 대부분의 용지 회사들이 자신들의 용지에 맞는 고품질 프로파일들을 각 프린터마다 제공해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였기에 프로파일을 직접 만들어 쓰거나 혹은 프로파일 없이 사진 이미지의 색을 수동으로 조금씩 조절해가며 적절한 색상으로 맞추었는데 이게 보통의 노역이 아니었다.

 

X-rite Gretag MacBeth i1 Pro 이미지출처: https://www.ebay.com/itm/283809103837

어쨌든 나는 값비싼 Gretag Macbeth사(X-Rite과 합병됨)의 분광측정기(spectro-photometer)와 Monaco Systems사(이 회사도 X-Rite에 합병된듯한데 정확하지 않다.)의 소프트웨어등을 통해 모니터를 정밀하게 캘리브레이션하고 나만의 프린트 프로파일들을 만들어 사용을 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으며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와 시간 부족으로(비용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는데 나보다 더 정확한 장비와 전문 지식을 가진 소수의 디지털 프린팅 전문가들을 통해 고품질의 프로파일들을 일부 나눔 받거나 디지털 프린팅 전문 온라인몰을 통해 유료 프로파일들을 구입 후 이를 조금씩 수정해 쓰기도 했다. 아무튼 카메라 장비 개미지옥이 있듯이 이 디지털 프린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엄청난 개미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이것저것 다해보던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너무 집착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완벽한 사진이란 없듯이 완벽한 프린팅도 없다.) 가정에서 최고 수준의 프린트 결과물을 만들기에는 수시로 변화하는 주변 환경과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희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아날로그 시절 못지않은 디지털 암실을 온전히 꾸며야 하는데 일반 아마추어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다.)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나 같은 보통의 아마추어 사진가가 갤러리 수준의 프린트를 만들어 상업적 판매 혹은 전시를 해야 한다면 그냥 유명 전문 출력소를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요즘은 디지털 컬러매니지먼트(Color Management)에 대한 이론과 정보가 널리 알려져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전문 출력소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 왜 P904 같은 전문가용 프린트를 구입하는가?

사실 꼭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간단히 내가 원하는 포토용지와 사이즈를 선택해 사진 파일을 웹하드에 올리고 주문을 완료하면 액자까지도 완성되어 집으로 배달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만약 좀 더 나은 품질의 프린트를 원한다면 내가 프린트할 용지를 미리 구입해(비용절감을 위해 최종 출력할 사이즈보다 작은 샘플 크기의...) 사진을 미리 프린트해 봄으로써 최종 결과물을 예측해보고 출력소와 상담을 통해 부족한 부분들을 좀 더 세밀히 보완하고 요청도 할 수 있을 것이다.(전문 출력소들의 프린터들도 그 크기는 달라도 대부분 잉크는 P904와 같은 계열을 사용한다.) 따라서 최종 결과물을 미리 경험하는 일종의 프루핑(proofing) 역할을 하는 도구로써 매우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열정이 있다면 P904 정도의 프린터만으로도 충분히 갤러리 수준의 결과물을 가정에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된 내 포토용지들중 일부분

며칠 전 나는 Calibrite ColorChecker Studio(X-rite i1 Studio와 같은 제품)를 구입을 했는데 간단하게 모니터와 프린트 프로파일을 만들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엔트리급 분광측정기이다. 이제 대부분의 프린트 프로파일을 포토용지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기에 효용가치가 그다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20년 전 구입해두었던 꽤 많은 양의 빈티지 포토용지들이 있다. 창고에 방치돼 있던 것들인데 보관상태가 꽤 좋아서 사용을 해보기로 하였다. 일부 용지는 아직 생산이 되는 것도 있고(제조사 스펙상 이름은 같지만 긴 시간이 흘렀기에 제조방식이나 재료가 조금씩 달라져 용지의 특성이 다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는 이미 단종돼 P904용 프로파일을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엡손에서 제공하는 프리미엄 광택지 프로파일의 gamut & CCS를 이용해 내가 만든 오래된 프리미엄 광택지 프로파일의 gamut

그래서 ColorChecker Studio(CCS)를 구입 후 틈틈이 이 오래된 용지들에 대한 프로파일들을 만들고 있는데 역시 제조사들에서 기본 제공하는 최신 프로파일들의 개멋(색역: gamut)이 내가 만든 프로파일들보다 확실히 더 크고 아름답다. 너무 차이가 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지금 내가 가진 장비의 한계일 수도 있고(혹은 아직 내가 사용법을 뭔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거나...) 겉보기에는 아무리 보관상태가 좋다고 하나 오랜 세월 앞에 이 용지들이 미세하게 변질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최근 용지들을 조금씩 구입해 차이점을 비교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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