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 15:05ㆍChat : 아무 이야기
Leica M11...
조금은 충동적인 구매였다.
그놈의 유튜브가 항상 문제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중 한 명인 랄프 깁슨(Ralph Gibson)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 그가 사용하는(물론 라이카로 제공받았겠지만...) M11을 써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버렸다. 곧바로 예약을 했고(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라이카 스토어의 안내처럼 대략 6개월 후 수령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너무 운이 좋았던 탓인지 어이없이 빨리 도착해버린 M11에 어리둥절한채 박스를 개봉하게 되었다.
처음 받아 든 M11의 인상은 "가볍다!"였다.
배터리를 포함한 바디의 무게가 530g으로 현재 내가 사용 중인 라이카 필름 바디인 MP(대략 600g)보다 더 가볍다.
알루미늄 상판의 블랙 바디와는 달리 황동으로 마감한 실버 버전의 경우 제조사 제원상 640g으로 카메라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는 나의 지론(持論)에 따라 고민 없이 블랙 색상을 선택했었다.
무게에서는 매우 만족스럽다.
거의 필름 카메라만 쓰다 최근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제법 익숙해진 탓인지 M11의 메뉴는 굳이 매뉴얼을 찾아보지 않아도 기본적인 촬영이 바로 가능할 만큼 적응에 큰 무리가 없다. 처음 후지필름 X-Pro3를 구입하고 복잡한 메뉴의 구성과 기능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참고로 이때는 포커스 피킹: Focus Peaking이 뭔지도 몰랐다. 또한 후지의 난해한 인터페이스는 솔직히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으로 놀랍다. 디지털카메라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필름 M과 그 만듦새나 근본적인 작동원리가 거의 대동소이하므로 오래전 나의 첫 라이카였던 M6를 구입했을 때 같은 짜릿한 흥분(?)은 느낄 수 없었지만 나날이 급변하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보수적인 라이카가 잘 버텨내(?) 이렇게 다시 만날 날이 생기니 반갑고 그랬다.
사실 나는 2002년 라이카의 초기 디지털카메라에 속하는 DIGILUX 1(일본의 파나소닉과 협업해서 만들어진 무늬만 라이카...)을 잠시 사용했던 적이 있었는데 꽤 멋들어진 외관에 비해 만족하지 못할 만한 성능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이베이(ebay)에 이 카메라를 되팔아버렸다. 그 시절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초짜중에 초짜였던 라이카의 한계였겠지만 RAW 파일조차 지원하지 않는 400만 화소(Max 2240 X 1680)의 디지룩스 1으로는 제대로 된 크기의 프린트를 만들기에는 이미지 해상도가 너무 작았고(지금은 대형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훨씬 발전된 여러 보간법이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노이즈가 사진 전반에 너무 심했다. 그것이 라이카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별로 좋지 못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당시 자체적으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할 능력이 없었던 라이카가 브랜드 명성 하나로 후지나 파나소닉과 협업을 해가며 그들의 기술을 베꼈건 훔쳤던 나름의 노하우를 축척하여 이제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어엿한 또 다른 강자(?)가 된 점은 칭찬할만하다.(평생 필름카메라만 똑딱거리며 만들다가 곧 망할줄 알았는데 하여간 독일인들의 생존력이란...)
아무튼 수많은 35mm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들중 이 비싸고 기능이 제한적인 M11을 구입하게 된 나름의 이유를 좀 더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고 가볍다.
미러리스가 대세인 요즘 카메라 시장에서 바디 무게가 라이카 M과 견줄 만큼 가벼운 제품들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전용 렌즈들을 포함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오리지널 라이카 렌즈들을 포함해 호환되는 서드파티 M 마운트 렌즈들은 가벼우면서도 작은 크기를 가졌다. AF(자동초점)를 포기했기에 당연한 결과지만 카메라 바디에 렌즈를 결합한 무게 및 총부피를 따져보면 나처럼 무거운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라이카 M은 매우 매력적이다. 무겁고 크면 잘 가지고 다니지 않게 되고 사진을 찍는 횟수가 줄어들며 결국 재미 또한 없어진다. 특히 M11 블랙의 경우 알루미늄 소재를 채용하고 M특유의 시그니쳐였던 분리되는 하판을 과감히 버린 탓에 기존 M10대비 100g 정도 무게를 대폭 줄였다.(대신 배터리를 개선했다.)
둘째: 고화소.
기존 M10-R의 4000만 화소보다 발전한 6000만 화소를 가졌다.
이는 35mm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들중 소니 A7R IV(6100만)와 시그마 FP L(6100만)을 제외하고는 현 시장에서 가장 높은 화소를 가진 카메라이다. 고화소가 결코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진에서 고화소와 대형 센서의 단점이 과연 있을까?(영상 쪽은 잘 모르겠다...) 내 무지한 지식으로는 필름 카메라 시절에도 입자가 매우 고운 필름이 그렇지 못한 필름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고 35mm에 비해 판형이 큰 중대형 필름들이 카메라의 부피가 커지는 점을 제외한다면 결과물에서 모든 면이 유리했다. 이것이 디지털카메라로 넘어왔다한들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필요에 따라 줄이는 것은 손쉽지만 늘리는 것은 과정이 복잡해진다.
셋째: Dynamic Range.
기존 필름을 쓰면서도 스캐너의 DMAX(어두운 암부를 표현할 수 있는 수치)와 DMIN(하이라이트를 표현할 수 있는 수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카메라의 다이나믹 레인지(DR)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는 내가 핫셀블라드 907X + CFV II-50c 를 구입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라이카에서는 새로운 M11이 최대 15 스톱의 DR(3600 혹은 1800만 화소로 촬영 시)을 가졌다고 표기하고 있으며 최대 화소(6000만)에서는 14 스톱의 DR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조사의 표기이며 DR테스트를 별도 측정해 발표하는 전문 사이트들(Photons to Photos & DXOMARK)의 테스트를 보면 M11은 대략 12 스톱 정도의 DR을 가졌다. 수치가 차이 난다고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는 14 스톱의 DR을 가졌다고 발표한 핫셀블라드 CFV II-50c 중형 크롭 디지털백과 비슷한 결과이다. 센서의 크기 차이를 감안하면 상당히 좋은 결과라 여겨진다. 현재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 중 사진용으로 최고의 성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소니의 A7R IV의 DR 테스트와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특정 ISO 구간에서는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물론 세대차가 나기에 만일 소니 A7R V가 나오면 현재보다 더 넓은 DR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M11은 기존의 M10-R이나 M10에 비해서도 1.5스톱이 넘는 차이를 보이는 DR 향상이 이루어졌고(물론 감도100과 64의 차이가 있기는하다.) 이것은 나름 큰 발전이라 여겨진다. 여전히 미친 가격이지만 그래도 기존의 M 시리즈들의 가격 대비 얼토당토않은 센서 성능이 이번 M11에 와서는 다소 만회가 되었다는데 동의하는 편이다.(하지만 여전히 타 브랜드에 비해 가성비는 전~혀 없다! 가격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고화소에 더 넓은 DR을 진작에 지원했어야한다.)
35mm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 중 작고 가볍고(렌즈 포함) 고화소에 넓은 다이나믹레인지를 가진 카메라를 따져보면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다. 내 구매를 애써 합리화시키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다.
카메라가 갑자기 많아져 사용성이 떨어진 후지필름의 X-Pro3는 곧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참 좋은 카메라인데 주인을 잘못 만나 제대로 사용해주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니면 크롭 센서의 장점을 살려 파노라마 촬영 전용으로 사용을 해볼까 고민이긴 하다. 장당 최대 화소수(6240x 4160)에서 RAW 파일 사이즈가 55Mb 정도이므로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파노라마 사진을 만들어도 컴퓨터로 작업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파일 사이즈가 될 것 같다.
이제 사진을 열심히 찍자!
이미지 출처:
https://photonstophotos.net/Charts/PD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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