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미니룩스: Leica Minilux

2023. 12. 14. 20:59Chat : 아무 이야기

 

얼마 전 무슨 바람이 갑자기 불었는지 카메라 보관함 구석탱이에 고이 잠들어 있던 라이카 미니룩스(Leica Minilux)를 들고 거리를 나섰다. 외출할 때 보통은 리코 Gr3X를 습관처럼 백팩에 챙기는데 이날은 그냥 왠지 이놈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은 존재마저도 잊고 지낼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 집에 대충 굴러다니는 CR123A 배터리 한알을 넣어주니 마치 어제도 썼던 카메라처럼 멀쩡히 작동을 한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라이카 미니룩스 40mm는 1995년 출시후 2003년경까지 생산된(출처 링크) 35mm 필름 전용 자동 똑딱이(Point & Shoot) 카메라이다. 독일의 라이카에서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실제 생산은 일본 Panasonic(Matsushita)에서 제조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국이 독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일부 라이카 골수 유저들에게 많은 비평을 받아왔지만 글쎄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나 싶다. 만듦새와 디자인 좋고 사진 잘 나오면 그뿐이지...

 

좌: Leica Minilux Black 우: Leica Minilux TINTIN

 

미니룩스는 기본 티탄 실버 컬러 버전외 몇 가지 변형된 모델(블랙, TINTIN, DB exclusive 등...)들로 나뉘는데 나는 2002년에 출시한 DB 에디션(정식 명칭: LEICA minilux DB exclusive, 촬영 정보를 필름에 기록할 수 있는 데이터 백 기본 장착)을 가지고 있다. 카메라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2023년 현재 대략적인 중고 가격은 120~2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인기 있고 비싼 모델은 역시나 블랙 버전이다. 일반 실버 모델의 경우 당시 미국 판매 가격이 약 $95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월을 감안해 보면 가격방어면에서 훌륭하다.(물론 콘탁스 T3의 미친 현재 중고 시세를 보면 왜 팔았나 한숨만 나온다.) 

 

2006, Leica Minilux, Fuji Provia 100F(RDP III), 무수정 스캔

 

나는 이 카메라를 2006년 개인 중고거래를 통해 직접 구입했다. 그때는 사진에 흥미를 잃고 다른 취미에 한눈을 팔고 있던 시기여서 돈이 될만한 사진 장비들을 야금야금 팔아치우고 있을 때였는데 참으로 애정해 마지않던 콘탁스(Contax) T3마저 덜컥 판매해 놓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허전함과 공허함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항상 들고 다닐 좋은 똑딱이 카메라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 마침 거의 미사용 상태의 이 매물을 발견하고 덥석 집어왔다. 그리고 겨우 몇 롤의 필름을 찍어보고는 곧 카메라 제습함에서 긴 시간 잠들고 말었다. 당시 필름들을 다시 살펴보니 가족 여행때 촬영한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비록 짧은 실사용 기간이었지만 여러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소중한 카메라이다.

 

2006, Leica Minilux, Fuji Provia 100F(RDP III), 무수정 스캔

 

미니룩스를 쓰다보면 몇 가지 불편한 점들을 금방 발견하게 된다.

 

1. 미니(Mini)가 결코 미니 하지 않다: 124 X 67 X 38mm의 사이즈는 생각보다 꽤 길고 두툼하다. 겨울철 외투 주머니에는 수납가능한 크기지만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면 카메라 가방을 따로 챙기게 만든다. 하지만 다소 큰 이 덩치 덕분에 카메라를 쥐고 셔터를 누를 때는 꽤 안정감을 주기에 마냥 단점으로 부각시키기에는 애매하다.

 

2. 최대 셔터 스피드 1/400초: 콘탁스 T3처럼 1/1200초(단 최대 개방에서는 1/500초로 한정됨)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1/400초 최대 스피드는 밝은 날 고감도 필름 촬영시 조리개 값을 너무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다행히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 넓은 관용성으로 인해 1~2 stop까지 과노출(overexposure)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므로 미니룩스의 EV 설정에서 +1 ~ +2 stop 노출 보정을 통해 셔터 스피드를 떨어뜨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 할 수는 있다. EV 메뉴에서 설정한 노출 보정값은 카메라를 끄고 다시 켜도 사라지지 않고 고정되기에 감도가 다른 새 필름을 넣는다면 확인해 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또한 필름의 DX 코드를 자동 인식할 뿐 카메라 자체에서 필름 감도를 수동 설정하지는 못한다.(DX 코드가 없는 필름의 경우 ISO 100으로 인식한다.)

 

 

3. 답답한 뷰파인더: 가장 불편한 부분이다. 0.35 배율, 시야율 약 85%의 작은 뷰파인더는 심지어 그 어떤 촬영 정보도 표시해주지 않는다. 현재 조리개 값과 셔터 스피드를 확인하려면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상판 LCD를 봐야만 한다. 초점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여부는 뷰파인더 창 옆에 위치한 작은 전구에 초록불이 계속 들어와 있는지 또는 깜박이고 있는지로 알 수 있는데 초록불이 지속되고 있어야 초점이 맞은 상태이다. 그래도 뷰 파인더에 눈을 댄 상태에서 어렴풋이(?) 확인은 가능하다. 

 

4. 1/2 stop 노출 보정: 1/3이 아닌 1/2 스탑씩 EV값을 보정할 수 있다.(+/- 0.5, 1.0, 1.5, 2.0) 관용성 좋은 네거티브 필름에서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예민한 슬라이드 필름 촬영시 좀 더 세밀하게 노출을 설정하고자 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5. AE-L(노출 고정) 혹은 AF-L(초점 고정) 버튼 부제: 사실 자동 똑딱이 카메라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옵션은 아니지만 AF-L 버튼이 외부에 별도로 있는 콘탁스 T3에서 꽤 유용하게 써왔던 기능이라 불편함이 남는다. 

 

6. 긴 최소 초점거리: 0.7m의 최소 초점거리는 오랜 라이카 M시스템 유저들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아무리 1995년 발표된 카메라라고 해도 나름 최신 럭셔리 전자식 카메라였는데 최소 초점거리를 조금 더 짧게 설계할만한 기술력이 당시 라이카에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콘탁스 T3처럼 0.35m의 최소초점거리까지는 아니어도 0.5m 정도까지는 고려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외 카메라를 켤 때마다 활성화되는 자동 플래시 때문에 매번 6번의 모드 버튼을 눌러 이 설정을 꺼야 하는 점, 저조도 상황에서 초점을 잘 잡지 못하는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격고야 만다는 내부 리본 케이블이 손상되어 카메라가 아예 먹통이 되는 공포(?)의 E02 에러(다행히 아직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등 여러 단점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은 벽돌덩이처럼 고지식하게 생긴 이 카메라를 좋아하고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1. 디자인: 언뜻 보면 투박해 보이는 외모 탓에 분명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준 미니룩스의 외관은 볼수록 기막히게 아름답다.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는 과감히 들어내고 단순화시켜 디자인 과정에서 결코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음을 당당히 보여준다. 장식하지 않았지만 대신 소재 자체의 특성을 잘 살려 디자인 감성을 드러내는데 특히 티타늄으로 마감된 바디에 오묘하게 마무리된 샴페인 색을 띠는 실버 컬러는 미니룩스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잘 어울린다. 비록 블랙 색상의 미니룩스가 더 비싸고 인기도 많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실버 컬러가 미니룩스에는 더 멋지다 생각한다. (디자이너로 알려진 Manfred MeinzerKlaus-Dieter Schaefer"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는 독일 바우하우스 모토를 이 일본제 카메라에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2. 단순한 기능: 출시 당시부터 비싼 럭셔리 Point & Shoot 카메라임을 표방하며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촬영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제외하고는 사실되는 것이 거의 없다. 덕분에 카메라를 다루어본 경험이 조금만 있다면 굳이 매뉴얼을 보지 않아도 사용법을 익히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누가보아도 한눈에 알아볼만한 기능 버튼들은 모두 외부로 노출되어 있으며 중복 없이 딱 그 역활만 담당한다. 혹시 모드 버튼과 우측 메인 휠을 같이 돌리거나 버튼 두 개를 동시에 누르면 뭔가 다른 설정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같은 상상을 해보지만 라이카 미니룩스에게 그런 숨은 기능은 없다. 하기야 그렇다.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수동 설정가능하고 플래시 모드 변경가능하며 셀프타이머 되고 노출보정되면 사진 찍는데 더 필요한 것도 없지 않은가? 프로그램 모드에 놓고 셔터 누르면 누구나 쉽게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2006, Leica Minilux, Fuji Provia 100F(RDP III), 무수정 스캔

 

3. 뛰어난 성능의 렌즈: 미니룩스는 4군 6매에 멀티 코팅된 라이카 Summarit F2.4 40mm 렌즈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OEM 생산된 만큼 솔직히 이 렌즈가 독일의 라이카 공장에서 직접 제조했다고 여겨지지 않지만 당시에도 콧대 높던 라이카에서 자사의 상징적인 렌즈 이름을 갖다 붙였기에 적어도 렌즈 설계, 생산 및 검수 과정정도는 철저히 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미니룩스의 주마릿 40mm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 렌즈라 믿기 힘들만큼 좋은 성능을 낸다. 조리개 전 구간 고르게 좋은 해상력을 가지고 있으며 왜곡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콘탁스 T3의 칼자이즈(Carl Zeiss) 조나(Sonnar) F2.8 35mm 렌즈와 비교되곤 하는데 두 카메라를 다 경험해 본 내 입장에서 보면 둘 다 놀라울 만큼 뛰어난 렌즈 성능을 가졌기에 평가는 어디까지 개인의 취향에 따른 몫으로 넘기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미니룩스의 주마릿 렌즈는 콘탁스 T3의 조나처럼 날카롭고 경쾌하지는 않지만 보다 묵직하면서 진득한 느낌이 있다. 선예도만 따지면 콘탁스 T3 조나가 더 샤프하다 느낄 수 있지만 미니룩스 주마릿은 표현력이 좀 더 풍부하고 여유 있다.(결국 냉정하게 광학적 성능만 놓고 본다면 콘탁스 T3 승?)

 

라이카 미니룩스는 1995년 최초 출시 때나 근 30여 년이 흐른 지금이나 여전히 호불호가 꽤 갈리는 카메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아직 현역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금껏 최고의 럭셔리 Point & Shoot 필름 카메라 중 하나로 빠짐없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단지 라이카라는 브랜드 파워 하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카메라 자체 본연의 매력이 있음에 틀림없다. 날씨 좋은 날 굳이 애쓰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며 한컷 한컷 추억을 쌓아가기 좋은 카메라이다. 여유가 된다면 하나쯤 소장해 보라 권하고 싶다.(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중 T형 인간은 콘탁스 T3를 강력 추천한다. 참고로 나는 F형이다.)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eica_minilux#/media/File:Minilux.JPG     

https://www.photosurcour.fr/leica-minilux-tintin-edition/

 

Leica Minilux Sample Photos: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

  

November 2023, Leica Minilux, Kodak Ektar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