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X5 흑백 필름 자가 현상: SP-645 Max

2024. 8. 20. 10:14Chat : 아무 이야기

SP-645 MAX

흑백 필름 자가 현상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흑백보다 컬러 사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흑백 필름 경험이 많지 않다.(흑백 사진이 필요하면 컬러로 촬영 후 포토샵등에서 쉽게 변환이 가능하다 여겨왔다.) 흑백 자가 현상을 마지막으로 했었던 것이 20년도 훌쩍 넘은 2000년 초반이었으니까  그 과정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니와 그나마 몇 번 해봤던 자가 현상의 수준이란 게 35mm 필름으로 대충 이렇게 저렇게 하면 현상이 되더라는 정도에 그쳤었기에 처음부터 아예 다시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했다.

 

흑백 필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 자가 현상까지 하게 된 계기는 대형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가격이 너무 비싼 컬러 필름대신 비교적 저렴한 흑백 필름(예로 Fomapan 시리즈들)을 구입해 대형카메라의 무브먼트 및 각종 촬영법을 테스트하며 공부하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현상된 필름(초기에는 전문 현상소에 위탁을 했었다.)을 보다 보니 흑백 필름의 매력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번 현상소에 맡기는 금액도 만만찮기에 이참에 본격적으로 자가 현상을 해보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우선 가장 큰 과제는 알맞은 현상 탱크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35mm나 120 필름이라면 주저 없이 조보(Jobo)나 패터슨(Paterson) 탱크에 전용 릴(Reel)을 구입하면 됐겠지만 4x5 필름의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적절한 시트 필름용 릴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많이 쓰는 조보 2520 멀티 탱크와 2509N 시트 필름 릴이 제일 무난해 보였지만 2509N 릴에 숙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름을 장착하는 것이 초기에는 꽤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고 2520 탱크는 사실 일정한 RPM으로 회전하는 자동 로터리 프로세서에 더 적합하기에 별도로 프로세서 구입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에서 망설여졌다.(물론 조보 1509 같은 수동 롤러를 사용해도 문제없다고는 한다.) 패터슨 멀티 3 탱크는 손교반과 로터리 프로세서 둘 다 사용할 수 있으나 패터슨 자체에서 제작하는 4X5 필름용 릴은 없는 것 같고 대안으로 MOD54 4X5 Processing Reel이나 B'S 4X5 developing reel MK2 같은 릴들을 많이 쓰는듯하다. 하지만 이들 릴 역시 필름에 작은 상처를 남기거나 필름이 릴에서 쉽게 빠지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패터슨 멀티 3 탱크와 B's 4X5 developing reel MK2 릴 그리고 B's processor를 구입하기로 결심을 거의 굳혀가던 중이었다.)

 

SP-645 두껑(lid)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Stearman Press LLCSP-445 현상 탱크(현상기)를 보게 되었는데 합리적인 가격($96 USD)에 무엇보다 필름 장착 방식이 일반 4X5 필름 홀더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급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기 버전의 경우 홀더의 필름 고정 돌기 부분이 필름의 가장자리에 자국을 남기거나 용액이 고르게 흐르지 못해 다소 불균일한 현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꾸준히 제품을 보완해서 현재의 Rev4 홀더에서는 이러 부분들이 많이 해결된 듯 보였다.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도 사용하기 쉽고 좋은 현상 결과를 만들어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어서 결국 주문을 했다. 홀더가 2개 들어가 총 4장을 현상할 수 있는 SP-445(475ml 용액 사용)와 홀더 3개에 6장을 한 번에 현상할 수 있는 SP-645(575ml 용액 사용)가 있는데 나는 조금 욕심을 부려 SP-645($127 USD)를 선택했다. 나름 환경을 고려해 약품은 최소 필요한 Kodak HC-110(이유는 예전에 내가 사용해 본 유일한 현상액이다.), Ilford Rapid Fixer 그리고 Kodak Photo-Flo만 구입했다.

 

SP-645 필름 홀더

배송된 SP-645는 언뜻 투박해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지만 ABS/PC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자체는 매우 튼튼하고 견고하며 마감 처리도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stearmanpress.com의 SP-645 매뉴얼필름 현상 지침서 그리고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을 부지런히 참조해 가며 현상 준비에 들어갔다. 테스트용으로 미리 촬영해 둔 Fomapan 100 필름들을 암텐트에서 SP-645 홀더에 조심스레 넣고(쉽게 들어간다.) Messive Dev Chart Timer 앱의 데이터를 참조해 첫 현상을 마쳤다. 사용법이 쉬워 그런지 처음치고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지만 아직은 현상이 일부 고르지 않은 부분들도 보였다.(특히 맑은 하늘 부분...) 이후 지금까지도 여러 번 현상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고 현상 결과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차후 현상액을 바꿔보거나(아마도 XTOL) 희석 비율을 달리해 시간을 조절해 가며 테스트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예정이다.

SP-645로 처음 현상한 Fomapan 100, 무수정 스캔

SP-645, Fomapan 100 시트 필름(ISO 100)의 내 현재 현상 데이터 기준은 대략 아래와 같다.(조금씩 바꿔가는 중...)

- 전습: 20C, 수돗물 600ml, 1분, 10초 기다린 후 4회 교반.(생략할 수 있음.)

- 현상: 20C, Kodak HC-110(1+31) 600ml, 6분, 최초 30초 연속 교반, 매 30초마다 4회 교반.(1+63, 9~10분도 가끔.)

- 정지: 20C, 수돗물 600ml, 1분, 10초 기다린 후 교반.

- 정착: 20C, Ilford Rapid Fixer(1:4) 600ml, 5분, 최초 30초 연속 교반, 매 30초마다 4회 교반.

- 수세: 수돗물 600ml, 1분 연속교반 7회 반복.(또는 뚜껑을 제거하고 약하게 흐르는 물에 10분 정도 둔다.)

- 습윤: 수돗물 500ml, Kodak Photo-Flo(1:400), 1분.

SP-645 교반 방향 출처: https://cdn.shopify.com/s/files/1/1273/8933/files/Film_processing_intro.pdf?v=1601659932

- 모든 교반은 부드럽고 천천히 진행한다.(+180, -180 이렇게 4회 반복하는데 거의 5~6초 정도 걸린다.)

- SP-645에 용액을 넣을 때 한쪽 마개(Vent)를 먼저 잠근 후 탱크의 몸통을 가볍게 쥔 상태(squeezing)에서 다른 쪽 마개(Fill/Drain)를 잠근다. 이렇게 하면 용액이 누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교반 후 탱크를 내려놓을 때 바닥을 가볍게 쳐서 거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준다.

출처: https://cdn.shopify.com/s/files/1/1273/8933/files/SP-645_Users_guide_A4.pdf?v=1682624247

그동안 35mm나 120 필름 자가 현상에 대한 정보는 많이 접해봤지만 대형 시트 필름을 직접 현상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특별한 현상탱크(조보 3010 Expert Drum 같은...)와 전문 로터리 프로세서(조보 CPE/CPP 같은...)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겼고 오래전 어깨너머로 구경해 봤던, 뭔가 굉장해 보이는 내공을 내뿜으며. 암실에서 트레이로 필름을 현상을 하던 사진과 후배의 모습을 떠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SP-645(SP-445)는 나처럼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자가 현상 초보자가 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필름 현상기라 여겨진다. 단점이 있다면 아마도 4X5 필름만 현상이 가능하다는 것일듯하다.

 

SP-445 현상 참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3KCCEbovig&list=WL&index=8&t=105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