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oid SS120 vs Plustek OpticFilm 135i

2023. 1. 23. 10:45Chat : 아무 이야기

어쩌다 보니 Polaroid SprintScan 120(이하 SS120) 중형 스캐너 및 Plustek OpticFilm 135i(이하 135i) 35mm 필름 전용 스캐너 둘 다를 가지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된 오늘날 필름 스캐너의 필요성은 예전에 비해 극도로 작아졌지만 여전히 필름 사진을 간혹 찍고 있는 나 같은 경우 필름 스캐너는 아직은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이다.

 

SS120은 우리에게 흔히 즉석카메라와 필름으로 잘 알려진 폴라로이드(Polaroid Corporation)에서 2000년 첫 선을 보인 당시로는 획기적인 디자인과 성능을 자랑하던 고급 중형 포맷 필름 스캐너이다.(니콘 CoolScan 8000ed 경쟁 모델.) Microtek Artixscan 120tf과 쌍둥이 모델로 대만의 마이크로텍이 OEM으로 제조해 폴라로이드에 납품한 것으로 알고 있다.(제공되는 기본 스캔 소프트웨어는 서로 다르다.) 알려진 대로 폴라로이드가 2001년 파산하면서 이후 얼마못가 곧 단종된 비운의 모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스캐너를 미국에 거주 중이던 2001년 연말경에 B&H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국내에서도 정식 발매(동원 폴라로이드)를 했었으며 당시 국내 출시가는 대략 39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미국 출시가는 실버패스트 스캔 프로그램 번들 포함 $2999.)

 

135i는 SS120이 고장 나면서(이후 다시 고침) 35mm 필름 전용 스캐너지만 핫셀블라드 XPan으로 촬영한 파노라마 포맷 필름을 스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차선책으로 급히 구입을 했었는데 작고 아담한 체구와는 달리 꽤 인상적인 성능을 가졌으며 금액 또한 60만 원대에 직구가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사실 이들 스캐너의 사용용도, 세부 스펙, 출시 시기 및 가격등을 엄밀히 고려했을 때 서로 비교대상이 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동안 두 스캐너들을 사용하면서 나름 느꼈던 점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작성해 본다.

 

해상도

내가 아는 한 이들 두 스캐너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스캔 프로그램은 현재 Vuescan이 유일하다. SS120 같은 경우 오리지널 소프트웨어인 PolaColor Insight Pro(Windows 2000, XP, NT, Mac OS X 10.2x까지 지원) 혹은 번들로 제공되던 SilverFast Ai(5.x, 6.x 버전, Windows 2000, XP, NT, Mac OS X 10.5까지 지원)는 현재 Mac OS에서는 사용이 불가하다. Vuscan은 윈도우즈 11 및 Mac OS 벤츄라에서도 문제없이 작동하며 한 번만 라이센스를 구매(한화 10만 원 정도)하면 여러 스캐너들에서 동시에 쓸 수 있어 더 이상 추가 비용이 들지 않기에 아주 경제적이다.(심지어 내 엡손 복합기의 평판 스캐너도 지원한다.) 꾸준한 업데이트로 이미 단종된 대부분의 구형 스캐너들을 지원하기에 아마도 가장 널리 이용되는 범용 스캔 전문 프로그램일 것이다. 처음 사용하면 인터페이스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심미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성능을 가졌으며 스캐너의 세세한 부분까지 설정 가능하다.

 

Vuescan 설정값

예제는 35mm 슬라이드 필름(transparency film)으로 24X36 그리고 24X65(XPan) 포맷으로 촬영되었으며 Vuscan에서 첨부 사진처럼 동일한 세팅으로 각각 SS120과 135i에서 스캔되어졌다.(예제에서는 Vuescan TIFF DNG 파일로 설정해 스캔을 했는데 RAW DNG 파일로도 스캔을 할 수 있으나 슬라이드 필름의 경우 노출에 일부 문제가 있어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에는 매체를 "이미지"로 선택, RAW DNG 파일로 스캔 후 Negative Lab Pro로 변환하는 방법을 나는 주로 쓴다.)

 

24X36

후지 RVP100F, 2006년 촬영한 필름을 SS120으로 스캔 후 아무 보정을 하지 않은 이미지이다.(4000 dpi, 3786x5536 pixel, 126MB.)

왼쪽 135i(3600 dpi) 오른쪽 SS120(4000 dpi)

왼쪽 135i(3600 dpi) 오른쪽 SS120(4000 dpi)으로 스캔한 이미지를 100% 부분 확대 크롭해보면 SS120이 조금 더 샤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35i의 스캔 결과물도 포토샵에서 다양한 샤픈 필터들을 이용해 충분히 보정 가능한 범위에 있으며 디테일에서 확연한 차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색감은 SS120으로 스캔한 이미지가 훨씬 원본 필름에 가깝다.

 

24X65

후지 RVP100F, 2004년 핫셀블라드 XPan으로 촬영한 필름, SS120 스캔 무보정 이미지이다.(4000 dpi, 10121x3552 pixel, 232MB.)

왼쪽 135i(3600 dpi) 오른쪽 SS120(4000 dpi)

왼쪽 135i(3600 dpi) 오른쪽 SS120(4000 dpi)으로 스캔한 사진을 200% 부분 확대 크롭해 비교해 보면 암부 표현에 있어 SS120의 디테일이 좀 더 나으며 135i에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글자 일부분의 디테일들이 SS120에서는 판독이 가능해진다. 이 역시 색감에 있어서는 SS120 스캔 결과물이 더 원본 필름에 가깝다.(색감은 포토샵이나 라이트룸에서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하므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SS120과 135i의 해상도 차이는 암부 표현 및 디테일에서 SS120이 앞서기는 한다. 하지만 비교적 보급형 필름 스캐너 범주에 있는 135i의 성능도 결코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필름 홀더

SS120 필름 홀더, 슬라이드 마운트, 35mm 필름, 파노라마, 유리 및 중형 필름 홀더
135i 필름 홀더, 슬라이드 마운트, 35mm 필름, 파노라마 전용 홀더

필름 홀더는 생각보다 스캔 품질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필름을 평평하고 견고하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결과물에 차이가 발생하곤 한다. SS120은 기본적으로 35mm 슬라이드 마운트, 35mm 필름 스트랩 그리고 120mm 중형 필름 스트랩 홀더를 제공한다. 나는 이외 폴라로이드에서 별도 판매했던 35mm 필름 파노라마 전용 홀더와 120mm 및 35mm 필름에서 사용 가능한 안티 뉴턴 링(Anti-Newton Ring) 유리 홀더도 추가 구매해 가지고 있다. 유리 홀더의 경우 필름면을 보다 평평하게 잡아줘서 좀 더 샤프한 스캔 결과물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가끔 발생하는 뉴턴 링 문제로 잘 쓰지 않고 있다. 135i는 35mm 슬라이드 마운트와 35mm 필름 스트랩 홀더를 기본 제공한다. 파노라마 홀더($40)를 별도 구입하면 24X226mm 영역을 한 번에 스캔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SS120 홀더

SS120 필름 홀더

단단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SS120의 필름 홀더들은 좋은 만듦새로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필름을 고정시키기 위한 덮개를 덮은 후 밀어(슬라이드 방식) 위치를 고정시키려는 순간 필름이 같이 딸려 이동해 버리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다시 덮개를 열어 프레임간의 위치를 재정렬 후 고정 시키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물론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겨 대략적인 이동 거리를 예측 가능하기에 단번에 원하는 위치에 필름을 정렬시킬 수도 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곤해 매우 귀찮고 번거롭다. 또한 파노라마용 필름 마스크와 함께 제공되는 유리 홀더의 경우 35mm 필름 스트랩에서 꽤 잦은 빈도로 뉴턴 링이 발생하며 중형 필름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좀 덜하긴 하지만...) 사용이 꺼려진다.(꽤 비싼 금액을 주고 추가 구입한 홀더인데...) 하지만 이 유리 홀더 문제는 비단 SS120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스캐너들(예: 니콘 9000ed)의 유리 홀더들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스캔을 하기 전 필름이 말려진 채 보관하지 않도록 꽤 신경을 써야 한다.(며칠을 무거운 책으로 눌러서 필름을 더 평평하게 펴준다든지...)

SS120 파노라마 홀더 사용시 미리보기 캡쳐

또한 Vuscan에서는 SS120의 중형, 유리 및 파노라마 홀더들의 필름 간격을 자동으로 인지하지 못하기에 사용자가 수동으로 "프레임 오프셋"과 "프레임 간격"을 별도 설정해 주어야 한다. 이게 나름 정확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은근히 삽질을 하게 만든다. 오래돼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PolaColor Insight Pro와 SilverFast 스캔 프로그램에서는 필름 포맷을 선택하는 메뉴가 있어서 자동으로 스캔 영역을 대략은 맞추어 주었던 것으로 아는데 확실치는 않다.

 

135i 홀더

135i 필름 홀더

가벼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135i의 필름 홀더는 언듯 보면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사용해 보면 굉장히 편리하게 느껴지는데 SS120의 홀더들과는 달리 슬라이드 방식이 아니라 경첩이 달려 위아래로 간편하게 덮을 수 있게 되어있다. 약간의 자력이 느껴지는 이 덮게 방식은 필름을 빨리 정확한 위치에 놓을 수 있으며 생각보다 필름면을 평평하게 잘 잡아준다. 매우 영리한 설계 방식이라 생각된다. 

135i 파노라마 스캔 홀더 사용시 미리보기 캡쳐

특히 135i의 파노라마 홀더를 사용해 Vuescan의 "파노라마 모드"로 스캔을 하면 단 한 번에 24x225mm 영역을 미리보기 한 후 원하는 프레임의 필름을 자유롭게 선택 지정해 스캔을 할 수 있어서(미리보기는 필름 스트랩당 최초 한 번만 하면 된다.) 스캔하고자 하는 필름 프레임을 매번 미리보기후 선택 지정해 스캔해야 하는 SS120과 달리 시간을 훨씬 아낄 수 있어 간편하다.(SS120의 최대 미리보기 영역은 한 프레임당 90mm로 제한되어 있다.)

 

스캔 속도

위 첨부 이미지는 SS120과 135i의 스캔 시간을 직접 측정해 비교 정리한 것이다. SS120의 경우 내가 구입한 2001년 당시에만 해도 4000 dpi의 고해상도 스캐너로써 꽤 빠른 속도를 가졌다고 여겨졌던 모델이었다.(그때는 그랬었다.) 근래에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까지 느렸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반면 135i의 스캔 속도는 이에 비해 번개 같다.

 

소음

SS120는 전원을 켬과 동시에 후면의 냉각팬이 즉시 돌기시작하고 내부 필름 홀더 캐리어와 CCD를 정렬시키기 위한 성가신 소음을 만들어낸다. 상당히 큰 "끼익~ 우당탕"하는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 때문에 혹시 스캐너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오해해 문의하는 글도 여러 차례 보았다. 정렬이 끝나고 스캔시에는 아주 하이테크한 긴 고주파음을 낸다. 조용한 밤에 이 스캐너를 쓸 때는 혹시 다른 집에 소음이 들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135i는 냉각팬이 별도로 없기에 대기시에는 아무런 소음을 만들지 않는다. 필름 홀더를 장착하거나 스캔을 시작하면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SS120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조용하다. 애플 워치의 소음앱을 이용해서 각각 스캐너의 소음 정도를 측정해 보았는데 표에는 SS120의 작동시 소음이 72db 정도라 표기돼 있지만 최대 80db을 찍기도 했다.

 

Polaroid SS120 vs Plustek OpticFilm 135i

Polaroid SprintScan 120과 Plustek OpticFilm 135i를 비교 정리하다 보니 너무 SS120의 단점만 부각시킨 느낌이 든다. 출시한 지 20년이 넘은 제품과 아직 생산 중인 현행 제품을 다루다 보니 사용 편의성에서는 135i가 장점이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스캐너의 본질인 스캔 품질에서만큼은 SS120이 유의미하게 135i를 앞서는 것도 분명하다. 만일 35mm 필름만을 사용하고 필름스캔의 주목적이 전문적인 프린트물을 출력할 용도가 아니라 웹 게시용 이미지나 4x6~A3 사이즈이하의 개인용 프린트를 만드는 정도라면 135i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필름 스캐너라 할 수 있다.(기본 제공되는 Plustek QuickScan Plus 스캔 프로그램도 쉬운 인터페이스에 사용하기 나쁘지 않다.)

 

사실 나는 SS120의 고장 문제를 해결하기전 일반적으로 SS120 보다 성능이 앞선다고 알려진 니콘 9000ed 혹은 이마콘(imacon) 같은 고성능 스캐너의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 단종된 지 오래된 이들 중고 스캐너에 적게는 200만 원 이상(니콘 9000ed)에서 많게는 700만 원 이상(imacon 848, X1이나 X5는 아직도 가격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포기... )을 지불해 가며 SS120보다 얼마나 더 좋은 품질의 스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다. 차리리 지금 내가 쓰는 핫셀블라드 X2DPentax FA 645 120mm F4 Macro 렌즈로 필름을 촬영하는 카메라스캔(digitizing)을 하거나 그 비용으로 고해상도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예: 소니 a7R IV) 혹은 중형 디지털카메라(예: Fujifilm GFX 50R, 50S II)를 중고로 구입해 아예 카메라스캔 전용으로 셋업해 활용하는 것이 가격대비 성능과 편의성에서 더 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정이 번거롭고 시끄러우며 느려터진 이 필름 스캐너 방식을 내가 더 선호하는 것은 예전 암실에 틀어박혀 공들여 필름을 현상하고 한 장 한 장 사진 인화를 만들 때처럼 기다림과 느림에서 느껴지는 그 감성이 아직은 맘에 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잘 찍은 사진이다. 제아무리 고성능의 스캐너를 가졌다한들 좋은 장면과 제대로 된 노출을 기록한 필름 한 장이 없다면 결국 아무런 소용도 없다.  

 

결론은 쓸데없는 비교질 하지 말고 사진이나 잘 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