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22:22ㆍChat : 아무 이야기
"판형이 깡패"라는 말이 있다. 사진에 있어서 빛에 노출되는 필름의 크기가 클수록 화질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카메라 센서가 커질수록 사진의 화질이 마냥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필름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같은 조건이면 필름 사이즈가 크면 클수록 해상력과 선예도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후지 GSW690III는 6X12 혹은 6X17 같은 특수한 파노라마 포맷을 제외하고 중형 카메라 중 가장 넓은 면적의 필름을 사용하는 6X9(실제 56X84mm) 포맷 카메라다. 일반적인 135(35mm) 필름에 비해 5배가 넘는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3:2 종횡비를 가지고 있어서 촬영 시 프레이밍 하기 친숙하기도 하다.
1992년 최초 발매 후 2000년대 초반에 단종된 것으로 알려진 GSW690III는 후지 GSW690 시리즈 중 가장 마지막 버전이며 뛰어난 성능의 EBC Fujinon SW 65mm(35mm 환산 28mm) F/5.6 렌즈가 고정되어 있다.(렌즈 교체 불가.) 핫셀블라드 V시스템처럼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를 렌즈에서 조절하는 리프 셔터(Leaf shutter)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최고 셔터 속도는 1/500초이다. 배터리가 필요치 않는 완전 수동 카메라기에 노출계마저 탑재돼있지 않아 별도 외장 노출계 사용을 필요로 한다.
"텍사스 라이카"(미국 본토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텍사스주에 빗대 텍사스주에서는 모든것이 커진다는 유머)라는 별명처럼 이 카메라를 처음 접하면 귀엽게 생긴 똑딱이 카메라를 터무니없이 뻥튀기해 놓은 듯한 비현실적 모양새에 살짝 실소마저 하게 만든다. 금속으로 만들어졌던 이전 세대의 690 시리즈들과 달리 GSW690III는 온통 플라스틱 외장으로 마감되어 있으나 내부는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듦새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무게(약 1,500g)도 그 크기(W 200 X H 120 X D 130 mm)만큼이나 묵직하며 우려와 달리 바디 그립감은 꽤 좋다.
넓은 면적의 포맷인 만큼 일반 중형 카메라와 다르게 셔터를 누른 후 필름 장전 레버를 두 번 연속 스트로크 해줘야 다음 카운터로 넘어간다. 120 필름의 경우 불과 8장 만을 촬영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해진다.
EBC Fujinon SW 65mm 렌즈는 최대 개방인 F5.6부터 이미 선명하며 최소 조리개인 F32를 제외한 F22까지 매우 뛰어난 선예도를 가지고 있다. (F8~16 정도에서 최고 성능을 보여준다.) 특히 35mm 환산 28mm의 화각은 풍경, 스냅 및 인물 촬영까지도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유용한 화각이라는 점에서 이 카메라의 활용성을 더 높여준다.
GSW690III의 가장 큰 단점은 렌즈와 영구 결합돼 있는 후드가 아닐까 한다. 즉 후드가 분리되지 않는다. 당기거나 밀어서 후드를 넣고 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초점, 조리개 그리고 셔터 속도 조절을 모두 렌즈에서 조절해야 하는 탓에 카메라 조작을 하려면 후드를 반드시 빼주어야 한다. 평상시 촬영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필터 사용에 제약이 생긴다. 큰 사이즈의 필터를 스탭업링과 함께 쓰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며 특히 사각 필터 같은 것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해외에서 임의로 후드를 잘라내 버리는 사례도 보긴 했지만 다행히 67mm 필터 규격을 가진 이 렌즈에 77mm 이하의 원형 필터까지는 후드에 방해받지 않고 사용할만한 공간이 겨우 난다. 따라서 나 같은 경우 장노출 촬영 시 77mm 마그네틱 ND 필터들을 스텝업링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딱딱 고정도 되지 않고 마냥 헐렁대는 이 후드가 상당히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외 GSW690III는 특이하게도 B셔터(Bulb Shutter) 대신 T셔터 모드를 채용하고 있다. 당최 왜 이렇게 설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 B셔터의 경우 셔터를 누르고 있다 놓으면 조리개나 셔터막이 닫히면서 즉시 노출이 중단되지만 이 카메라는 T모드에서 촬영을 중단코자 할 때 셔터 노브를 돌려 위치를 변경(예: T -> 1s)해 주거나 장전 레버를 한번 움직여 줘야 비로소 조리개가 닫히게 된다. 어느 쪽이든 카메라에 미세한 움직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삼각대를 사용한 장노출시등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원하는 시간만큼 셔터를 누른 후 렌즈에 검은 천이나 모자등을 덮어 노출을 멈춘 다음 T모드에 있는 셔터 노브를 돌려 촬영을 마치는 방법이 권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렌즈를 가리지 않고 그냥 손으로 셔터 노브를 조심스레 살짝 움직여 조리개를 닫아주는 방법을 쓰고 있기는 한데 실수로 카메라를 쳐서 큰 움직임을 만들 수도 있기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 권장하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카메라는 결코 아니다. 생각보다 무겁고 부피도커서 휴대성이 좋지도 않다. 하지만 도무지 고장 날 것 같지 않은 간결한 구조와 손쉬운 조작법을 가지고 있고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원하며 대형 프린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가격대비 가장 완벽한 중형 필름 카메라가 아닐까 한다. 내가 쓰고 있는 폴라로이드 Sprint Scan 120 필름 스캐너로 4000 dpi RAW DNG 파일로 스캔했을 시 약 13100 X 8450 픽셀, 650MB이라는 엄청난 크기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1억 화소의 핫셀블라드 X2D 중형디지털카메라의 경우 약 11600 x 8740, 200MB 정도의 RAW 이미지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상태 좋은 GSW690III는 현재 국내외 약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에 구할 수 있다. 필름값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사용해 볼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카메라라 생각된다.
Fuji GSW690III로 촬영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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