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1. 23:03ㆍChat : 아무 이야기
아주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고 꼭 가지고 싶었던 카메라가 있었다.
필름을 넣을 수 있는 몸체 그리고 빛을 받아들이는 렌즈, 그 외 모든 것들은 생략해 버린 카메라.
노출계는 물론 초점 보조 장치마저 없어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야 하는 완전 수동 카메라.
그래서 더 미적으로 아름다운 카메라.
전설(?)적인 38mm Biongon 렌즈가 바디에 영구히 결합되어 있는 카메라.
핫셀블라드 SWC이다.(Super Wide C, SWC/M, 903SWC, 905SWC)
나는 6X6 포맷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1:1 정방형 프레임은 개인적으로 정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너무 강하다고 느껴서이다. 가로 또는 세로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일반적 필름 포맷들이 사진가의 사진 구성에 더 많은 자유도와 재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디자인은 SWC와 흡사한 클래식한 아름다운 외관을 가졌으면서 다양한 종횡비를 선택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907X를 애써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X2D를 구입하면서 907X는 아쉽게도 처분해 버렸다.)
그런데 35mm 필름 환산기준 21mm에 해당하는 Carl Zeiss Biogon 38mm로 촬영된 사진들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초광각에 해당하는 화각임에도 원근감이 과도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과감한 다이나믹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1:1이라는 고요한 프레임틀을 만나 뭔가 여성적이면서 부드럽고 세련된 광각 표현이라 해야 할지...(말해 놓고 나도 뭔 소리인지...)
그렇게 쭉 마음 한편에 이 SWC를 담아두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며칠 전 SWC/M을 결국 구입했다. 원래 903SWC(가장 최근 버전인 905SWC는 중고가가 아직 너무 높아서 애초부터 제외했다.)를 구입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깨끗한 카메라를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서울 모 샵에 있는 비교적 좋아 보이는 SWC/M이 눈에 들어와 고민하다 주문하게 되었다.
내가 받아 든 SWC/M은 시리얼로 미루어 볼 때 1983년에 제작된 T* 코팅, Prontor 셔터 CF렌즈를 채용한 중기형 모델(1982~1985년까지 생산)이다. 40년의 세월을 감안해 보면 외관 및 작동 상태가 양호하다.(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세월의 흔적은 조금 느껴지지만 이제는 이런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첫 촬영이라 망칠 수도 있으니 가장 저렴한 코닥 골드 200을 필름 백에 넣고 간단한 테스트 촬영을 하러 다녀왔다. 작은 가방에 카메라와 KEKS KM02 외장 노출계만 달랑 담고...
목측식 카메라이기에 초점 확인이 눈으로 직접 안돼 불편해 보이지만 같은 방식의 롤라이 35를 썼던 경험도 있고 라이카 MP나 M6에서도 존 포커싱을(Zone Focusing) 활용해 스냅사진들을 꽤 찍어왔었기에 초점 조절에 애를 먹을 일은 없었다. 특히 나는 F8이상 조리개를 조이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노출 확인하고 조리개 및 대략적인 거리 설정 후 그냥 셔터를 누르면 되기에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다. 다만 수평을 맞추는 것에 다소 공을 들여야 하는데 이 부분도 상단에 장착된 메가폰 파인더의 좌측 프리즘을 통해 본체의 수평계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기에 조금만 신경 써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첫 테스트롤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좋았다. 38mm 비오곤 렌즈의 성능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기존 사용 중인 풀프레임 환산 같은 21mm 화각을 가진 마미야7 43mm 렌즈도 아주 샤프한 렌즈라고 여겼는데 더 뛰어난 해상력을 보여주면 주었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곡도 더 적어 보인다.
겨우 달랑 한 롤의 테스트 촬영을 해봤을 뿐이지만 아직은 이 카메라의 단점을 딱히 찾지는 못하겠다. 숙달이 덜돼 필름 장착이 조금 번거로운 면이 있고 촬영 전후 필름 백의 칼집(Dark Slide)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 귀찮은 정도?(분실 위험도 있어 보인다.)
그냥 편하게 자주 가지고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카메라이다.
오늘은 무슨 렌즈를 같이 챙겨갈까? 같은 고민은 아예 할 필요도 없기에...
좀 더 오랜 기간 사용해 보고 추후 관련글을 작성해 볼 예정이다.
테스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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