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selblad 503CW 에피소드

2024년 연말, 불현듯 Hasselblad 503CW를 구입했다.

 

사실 나는 1990년대 중반쯤 가난했던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거금을 들여 핫셀블라드 503CX를 사들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수동으로 조작되는 그 카메라가 당시에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 채 1년도 사용하지 못하고 결국 처분해 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젊고 철없이 어렸을 때라 핫셀블라드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빵모자 눌러쓰고 풍경 사진이나 찍는 그런 카메라라는 편견도 한몫했었다.) 그 돈으로 Contax G1 풀세트를 구입했고 아주 만족해하며 신나게 잘 썼다.(지금은 내 손을 떠나고 없지만 아마도 그때의 콘탁스 G1이 내 인생 카메라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입한 503CW는 CFE Planar 80mm F2.8 렌즈가 포함된 기본 구성인데 바디 및 렌즈 내외관이 모두 매우 깨끗하고 작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뒷 렌즈 그룹에 사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미세한 얼룩이 내부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반품을 고려하다 시세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을 지불했고 나머지 상태가 좋았기에 이 정도는 감수하고 그냥 쓰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한번 의식해 버린 뒤 오는 찜찜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결국 며칠 전 국내 올드 렌즈 클리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업체에 청소 의뢰를 맡겼다. 수리 예상 기간이 2~3개월이라 이제 당분간은 잊고 지내야 한다.

 

이후 CFi Distagon 50mm F4, CFi Makro 120mm F4, PME51 Prism Finder 그리고 Converter 2XE 등을 차례로 추가 구입했다.

 

CFi Distagon 50mm 구입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는데 처음 구입했던 렌즈는 초점이 전체적으로 맞지 않고 광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전핀이나 후핀 현상 정도가 아니라 조리개를 아무리 조여도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 구입처에서 간단한 조정만으로도 수리를 자신했기에 그렇게 해봤지만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환불을 받았다. 뒤이어 중고 매물이 비교적 흔한 CF Distagon 50mm FLE 렌즈를 구해볼까 했지만 이미 CFi Distagon 50mm 렌즈용 전용 후드와 필터(Bayonet 70 사이즈)를 별도 구매해 놓은 상태(전용 후드와 필터 가격만도 만만찮다.)라 CFi 버전으로 다시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CFi 50mm & CFe 80mm 테스트 필름, 왼쪽 CFi 50mm 렌즈 셔터 문제로 노출이 일정하지 않다.

얼마 뒤 국내 모 샵에서 좋아 보이는 CFi Distagon 50mm 매물을 발견하고 주문을 했는데 렌즈 내외관과 광학 성능은 완벽했지만 이번에는 셔터에 문제가 있다. 일부 구간에서 조리개가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반품을 할까 심히 고민하다 평소 내가 신뢰하던 수리점에 상담 후 오버홀을 받았다. CFi Distagon 50mm 국내 매물(요즘 환율을 보면 ebay 같은 해외직구하기가 겁난다.)이 좀체 찾기 힘들기도 했고 이쯤 되면 다른 개체를 구입해도 왠지 또 문제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깔끔하게 오버홀 된 CFi Distagon 50mm는 현재 아주 잘 작동한다.

 

PME51도 문제가 있었다. 내 Acute-Matte D(#42217) 포커싱 스크린에서 노출이 정상보다 약 1.5~2 스톱 오버 측광된다. 이제는 중고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단종된 지 오래된 기기이고 여러 소유자들을 거치면서 임의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스크린 밝기에 따라 노출값을 조정했었거나 세월에 따른 노후화로 인해 노출이 틀어질 수 있기에 이 역시 CFi 50mm와 같이 수리점에서 깔끔히 조정을 완료했다.(1 스톱정도 차이는 ISO 조절로 참고 쓰겠는데 2 스톱차이는 좀...)

 

근 한 달여 동안 이 핫셀블라드 장비에만 매달려 테스트 및 정비 의뢰하기를 거듭했던 것 같다. 중고 카메라 장비 구입 시에는 제 아무리 판매처나 판매자가 좋은 등급으로 분류해 놓고 문제가 없는 제품이라 주장하더라도 철저히 테스트해 보고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핫셀블라드 X2D를 구입하기 위해 처분했던 907X+ CFV II 50C를 아직 가지고 있었더라면 503CW 활용도가 더 높아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500 시리즈 V 시스템 바디에 X2D 장착을 가능케 하는 그런 어댑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겠지?

 

어쨌든 이제는 평생 사용하자.

 

Hasselblad 503CW, CFi 50mm F4, Kentmere 100

 

Hasselblad 503CW, CFi 50mm F4, Kentmere 100

 

Hasselblad 503CW, CFe 80mm F2.8, Kentmere 400

 

Hasselblad 503CW, CFe 80mm F2.8, Kentmere 400

 

Hasselblad 503CW, CFe 80mm F2.8, Kentmere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