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son Perfection V850 Pro 스캐너

2024. 2. 1. 11:14Chat : 아무 이야기

Epson Perfection V850 Pro

최근 구입한 토미야마 아트 파노라마 170(Tomiyama Art Panorama 170) 때문에 결국 엡손 V850 Pro 스캐너까지 사게 되었다. 이미 나는 니콘 CoolScan 9000ED를 사용하고 있지만 막상 6X17 포맷 필름을 스캔하려니 여러 번거로운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니콘 9000ED가 최대 6x9 포맷까지 지원하니까 6X17 포맷은 그냥 2번에 나눠 스캔 후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에서 좌우를 합치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테스트 촬영된 필름을 스캔해 보니 9000ED로는 결코 2번 만에 6X17 사이즈의 필름을 스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3장으로 나눠 스캔한 이미지를 라이트룸에서 병합

6X17 포맷으로 촬영된 실측 필름의 사이즈는 약 56 X 170mm 정도로 6X9 포맷의 실제 필름 사이즈인 56 X 84mm 보다 물리적으로도 두 배이상 그 길이가 길며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에서 나누어 스캔한 이미지를 제대로 합치기 위해서는 20% 정도는 서로 겹치는 여유 부분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스티칭이 된다. 결국 최소 3번은 나누어 스캔을 해야만 제대로 된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즉 6X7 포맷 필름을 3번이나 스캔해야 하는 꼴이 된다.

 

VueScan 입력 메뉴

이렇게 3번에 걸쳐 한 장의 필름으로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꽤 귀찮은 일인데 내가 쓰는 뷰스캔(VueScan) 프로그램은 중형 필름을 스캔할 경우 사진 프레임의 크기를 필름 포맷별로(645, 6X6, 6X7, 6X9등...)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메뉴"-"입력"에서 "프레임 오프셋"과 "프레임 간격" 값의 수치를 넣어 스캔하고자 하는 필름의 영역 사이즈를 정해주게 되는데 3장으로 나누어 서로 적당히 겹쳐지는 입력값을 매번 계산하는 것도 성가신일이다.(물론 어느 정도 숙달되고 나면 익숙해지긴 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애청하는 6X17 포맷 전문 사진가이자 유튜버인 Nick Carver가 평판 필름 스캐너인 엡손 V750을 가지고도 아주 샤프한 스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멋진 프린트도 출력해 낸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엡손 스캐너에 관한 그의 동영상 게시물들을 대부분 정독 후 약간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결국은 V850 Pro를 주문했다. Nick Carver는 그의 동영상에서 betterscanning.comVariable Height Mounting Station을 이용한 습식 마운트(Wet or Fluid Mount) 스캔이 가장 좋았다고 언급했고 나 역시 그 방식을 고려해 봤지만 불행하게도 betterscanning.com은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도 안티 뉴턴 유리(Anti-Newton Ring Glass) 주문 관련해 수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었고 이번 습식 마운트 구입 메일도 여전히 답신이 없다. 결국 전문 필름 스캐너에 비해 다소 부실해 보이는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엡손 필름 홀더를 쓰는 수 외에 딱히 다른 대안이 현재는 없어 보이는데 다행인 것은 Nick Carver에 의하면 습식 마운트 스캔 다음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그냥 엡손 정품 홀더를 쓰는 것이라는 점이다.

 

SilverFast 9 SE Plus

V850 Pro의 기본적인 설치를 간단히 끝내고 번들로 제공하는 SilverFast 8 SE Plus으로 먼저 테스트 스캔을 해봤다. 필름 스캔 전용 프로그램들 중 가장 다양하고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실버패스트는 이미 Polaroid SS120 스캐너를 사용하던 시절 경험해 봤기에 적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실버패스트의 멋대가리 없는 인터페이스는 아직 여전해서 왠지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실버패스트 8 SE Plus에서 스캔할 필름의 프리뷰가 뜨질 않는다. 실제 스캐너는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지만 프로그램상에서 프리뷰 화면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실버패스트 홈페이지에서 실버패스트 8 버전은 맥 OS 벤츄라 이상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실버패스트 9로 업그레이드하라는 도움글을 찾았다.(9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을 때는 "설정"-"CMS"-"Input"을 "none"으로 해도 된다.) 다행히도 스캐너 구입시 딸려온 번들 버전의 실버패스트 8 버전일지라도 제품을 구매한지 2달 안에는 영수증을 첨부해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9 버전을 무상 업그레이드해 주는 기특한(?) 정책탓에 무사히 SilverFast 9 SE Plus를 다운로드해 설치를 마쳤고 이제 모든 것이 잘 작동한다.(뭔가 굉장히 돈을 번 느낌이었다.)

 

V850 Pro 3200 dpi 무수정 스캔, 좌: SilverFast, 우: VueScan

V850 Pro는 기존 내가 니콘 9000ED와 사용해 왔던 뷰스캔과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한다. 각 스캐너마다 별도 라이센스를 사야 되는 실버패스트와는 달리 뷰스캔은 최초 구입 비용(한화 10만 원 정도...) 한 번만 지불하면 시중에 나와있는 거의 모든 스캐너들에 공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자연스레 실버패스트와 뷰스캔의 결과물을 서로 비교하게 되었는데 몇 번을 각종 옵션을 바꾸어 테스트해 봐도 적어도 내 눈에는 실버패스트가 조금 더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기본적인 워크플로우는 3200 dpi, 48bit RGB RAW, Positive 스캔 후 라이트룸에서 Negative Lab Pro로 네거티브 변환을 한다.

 

하지만 실버패스트 SE Plus 버전은 스캔 파일의 48bit 저장을 지원하지 않는다. 48->24 bit를 선택하거나 48bit HDR RAW 혹은 64bit HDR RAW(또는 적외선 채널을 포함한 HDRI RAW)로 스캔을 해야 하는데 HDR RAW의 경우 그야말로 모든 정보를 손상시키지 않는 원시파일로 스캔을 하고 저장하기에 프로그램에서 각종 컬러 수정이나 먼지제거 같은 기능들을 사용할 수 없다. 니콘 9000ED에서는 별도로 먼지 제거 기능(Digital ICE)은 쓰지 않았는데 스캔된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넘겨 한 땀 한 땀 나름 지울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판 스캐너인 V850 Pro는 구조상 먼지 유입에 훨씬 취약하므로 다른 것들은 몰라도 적어도 실버패스트 먼지 제거 기능인 ISRD는 꼭 필요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미지 손실을 최소화시키는 48 bit 파일로 저장을 원하고 동시에 컬러 수정과 먼지 제거등 여러 옵션을 스캔시에 선택하길 원한다면 더 상위 버전인 스튜디오 Ai(Studio Ai)로 유료 업그레이드(89유로)를 하거나, 또는 SE Plus에서 HDR(48bit) RAW나 HDRI(64 bit) RAW 파일로 스캔해 저장한 뒤 실버패스트의 RAW 파일 전문 현상 프로그램인 스튜디오 HDR(Studio HDR)을 추가 구입해(버전에 따라 99 또는 249유로) RAW 파일의 컬러수정, 먼지제거, 샤프니스, 필름 입자등 여러 조정을 거친 후 48 bit 이미지로 저장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차후 관련 글을 다시 써보겠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엡손 V850 Pro의 장점:

1. 다양한 필름 포맷(135, 645, 6X6, 6X7 ,6X9, 6X17, 4X5 등...)을 가리지 않고 스캔할 수 있으며 일반 평판 스캐너로도 활용 가능하다.

2. 필름 홀더들을 여유 있게 각 2개씩이나 챙겨준다.

3. 꽤 비싼 전문 스캔 프로그램(SilverFast 9 SE Plus)과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인 Xrite i1 Scanner(IT-8 Target 포함)를 번들로 제공한다.(별도 구입시 각각 99, 59유로.)

4. 상당히 조용하게 동작한다.

5. 최신 OS를 탑재한 거의 모든 컴퓨터 시스템과 호환되므로 설치에 문제가 없다.

6. 현재 생산 중인 제품이므로 언제든 신품 구입이 가능하며 차후 AS 처리가 용의 하다.

 

좌: Nikon 9000ED 4000 dpi, 우: Epson V850 Pro 3200 dpi

엡손 V850 Pro의 단점:

1. 다소 부실해 보이는 플라스틱 소재의 필름 홀더.(안티 뉴턴 유리도 진짜 유리가 아닌 아크릴 같은 플라스틱 소재.)

2. 스펙상 6,400 dpi 광학해상도를 가졌다지만 실제는 2,400~2,900 dpi 정도의 해상력을 가졌다.(관련 리뷰 참조)

3. 먼지 유입에 취약해 매번 먼지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4. 자동 초점(Auto Focus)이 없는 고정 초점 방식이다. 기본 필름 홀더로 0.5mm씩 높이를 조절해 가며 초점 세팅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나 아주 세밀하게 조정은 할 수 없다.

5. 니콘 9000ED 같은 전문 필름 스캐너에 비해서는 확실히 스캔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뛰어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필름 스캔 방법은 어쩌면 고화소 디지털카메라와 샤프한 매크로 렌즈 그리고 네거티브 서플라이(Negative Supply)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고품질의 필름 캐리어와 광원 세트를 사용한 카메라 스캔(Digitizing) 일 수 있다. 대형 프린트를 위해 한 장의 필름을 여러 번 나누어 촬영해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에서 합쳐 초고해상도의 이미지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먼지를 정성껏 불어내고 홀더에 반듯하게 정렬 후 집어넣은 필름을 스캐너가 한 장 한 장 스캔해 내는 모습과 소음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이제는 구식 장비가 되어버린 필름 스캐너를 아직은 차마 버리지 못할 때 일 것이다.